성경공부 > 요일 1:9 죄 자백과 용서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죄 자백과 용서
요한일서 1:9는 죄의 자백이 용서를 사는 공로가 아니라, 약속에 신실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해 죄 사함과 정결을 받는 길임을 가르친다.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장은 이를 신자의 평생에 걸친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설명한다.
요일 1:9는 신자가 죄를 자백(ὁμολογέω,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함)하면, 하나님이 미쁘심(πιστός)과 의로우심(δίκαιος)에 근거해 죄를 사하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용서의 근거는 인간의 자백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자기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이며,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장은 이를 신자가 평생 반복하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설명한다.
본문과 문맥
요한일서 1:5-10은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루는 단락이다. 요한은 세 개의 거짓 주장(1:6, 8, 10)을 차례로 논박한다. 그중 1:8과 1:10은 죄 없음을 주장하는 자기기만을 정면으로 친다. 죄를 부인하는 영지주의적 완전주의에 맞서, 요한은 1:9에서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백하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는 자의 표지다.
구조상 1:9는 1:7(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심)과 짝을 이룬다. 1:7이 그리스도의 객관적 속죄를, 1:9가 신자의 주관적 적용을 말한다. 자백은 죄를 만들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마련된 정결을 자기 것으로 받는 통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칭의받은 신자가 어떻게 깨어진 교제를 회복하는가에 관한 말씀이지, 거듭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원어 분석
핵심 동사는 ὁμολογῶμεν(homologōmen)으로, 현재 능동태 가정법 1인칭 복수다. 원형은 ὁμολογέω(homologeō)이며 ὁμός(homos, 같은)와 λέγω(legō, 말하다)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같은 것을 말하다, 곧 동의하다·시인하다를 뜻한다. BDAG는 이 단어를 to concede that something is factual or true, 즉 사실로 인정하다·고백하다로 정의한다. 자백은 감정의 토로가 아니라 자기 죄에 대해 하나님과 동일한 판단에 동의하는 것이다.
현재 시제 가정법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반복적 행위를 함의한다. 죄 자백은 회심의 한순간이 아니라 신자의 평생에 걸친 습관이다.
하나님의 두 속성도 핵심이다. πιστός(pistos, 미쁘신·신실하신)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뜻이고, δίκαιος(dikaios, 의로우신)는 그 약속과 그리스도의 속죄에 부합하게 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용서의 토대를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에 둔 것이 이 구절의 신학적 무게중심이다.
두 동사 ἀφῇ(aphē, 원형 ἀφίημι, 사하다·놓아주다)와 καθαρίσῃ(katharisē, 원형 καθαρίζω, 깨끗하게 하다)는 모두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하나님의 응답이 확정적이고 효력 있는 단회적 행위임을 보인다. 죄책의 제거(사함)와 오염의 제거(정결)가 함께 주어진다.
칼빈의 주석
칼빈은 요한일서 주석(CO 55:309)에서 이 구절의 무게를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해석에 둔다. 칼빈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실 때 의로우시다는 말이 언뜻 역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이 자기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의로우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곧 의로우심은 심판의 엄정함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는 일관성을 가리킨다.
칼빈은 또한 이 자백이 사제 앞에서 죄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로마교회식 고해성사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정죄하여 그분의 자비에 자신을 던지는 마음의 행위다. 칼빈에게 자백의 가치는 그 행위의 공로에 있지 않고, 자백하는 자가 의지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다. 용서의 원인은 우리의 고백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연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Of Repentance unto Life)가 이 구절을 직접 다룬다. WCF 15.2는 회개를 죄인이 자기 죄의 위험뿐 아니라 그 더러움과 가증함을 보고 슬퍼하며 미워하여 모든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요일 1:9의 자백은 바로 이 돌이킴의 언어적 표현이다.
WCF 11장 칭의 5항은 이 구절의 신학적 위치를 정확히 짚는다. WCF 11.5는 하나님이 칭의받은 자들의 죄를 계속해서 용서하시며, 그들이 비록 칭의의 상태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으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진노 아래 들어갈 수 있고, 자신을 낮추고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기 전까지는 그분의 얼굴빛을 회복하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곧 요일 1:9는 칭의의 회복이 아니라 깨어진 부자 관계와 교제의 회복을 다룬다. 신자는 자백으로 다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칭의 안에서 아버지와의 교제를 새롭게 한다.
이 구분은 개혁주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자백이 칭의의 조건이라면 행위 구원으로 미끄러지고, 자백이 무의미하다면 값싼 은혜로 떨어진다. WCF는 자백을 칭의받은 자의 평생에 걸친 성화적 회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두 오류를 모두 피한다.
묵상 질문
1. 나는 죄를 자백할 때 하나님의 자비를 막연히 기대하는가, 아니면 약속에 신실하시고(πιστός) 의로우신(δίκαιος) 그분의 성품을 신뢰하는가? 용서의 확신이 나의 진실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기도를 어떻게 바꾸는가?
2. 현재 시제 가정법이 보여주듯 자백이 평생의 습관이라면, 나는 지금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하기를(ὁμολογέω) 회피하고 있는 죄가 있는가? 그 죄를 부인하는 것(1:8)과 자백하는 것 중 나는 어느 길에 서 있는가?
참고 문헌
John Calvin, Commentarii in Epistolas Catholicas, in Ioannis Calvini Opera Quae Supersunt Omnia (CO) 55, ed. Baum, Cunitz, Reuss, Corpus Reformatorum (Brunswick, 1863-1900), 55:309.
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6), 11.5; 15.2.
I. Howard Marshall, The Epistles of John,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78).
Robert W. Yarbrough, 1-3 Joh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BEC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8).
Stephen S. Smalley, 1, 2, 3 John, Word Biblical Commentary (WBC) 51 (Waco: Word, 1984).
Walter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BDAG), 3rd ed., rev. Frederick W. Dank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s.v. ὁμολογέ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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